요한복음 강해

요한복음 12장(자기 인생을 주도하는 사람)

동완 2014. 10. 7. 23:18

요헌복음 12장에는 다섯 종류의 사람아 나옵니다. 

마라아, 가롯유다, 종려나무를 든 환영의 군중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 몰래 믿는 관원들.

 

-마리아와 같이 헌신적인 사람, 

-가롯유다와 같이 제자이면서도 돈을 훔쳐가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기적을 통하여 병고침을 받고 5병2어를 통하여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기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많은 군중, 

-기존 가치관의 틀에 사로잡혀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예수를 믿되 분위기가 무서워 몰래 믿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오늘 마리아는 부모가 없이 나사로,마리아,마르다 3남매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지난번 11장에서 나사로가 죽었다가 예수님이 다시 살리신 기적을 행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오늘 12장은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면서 이 집을 들었습니다. 이 때 마리아는 300 데나리온의 값이 나가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렸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어른 하루 품삯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오늘날로 치면 3천만원 상당의 귀한 것이었습니다. 이 부모도 없는 이 가정에서 이것은 전 재산과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가롯유다는 12제자 중 가장 셈이 빨랐던 사람같습니다. 회계를 맡고 있었는데 공금을 훔쳐갔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다고 하니 이제야 왕이 되시는구나 하고 많은 무리들이 환호하였습니다.  그들을 질병과 배고픔에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왕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닷새만에 이들읭 태도가 돌변합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체포되는 모습을 보자 그들의 기대와 어긋나는 것을 느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하여 우리 인생을 점검해 보아야 겠습니다.

가롯유다는 마음 속에 일어나는 욕심을 통제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잘 통제하는냐 그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가롯유다는 결국 자살로 자기의 인생을 마칩니다.

또한 아무 생각없이 시류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쪽이 나에게 이로울 것 같으면 이쪽에 섰다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태도를 바꿉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에 그들이 나쁘다고만은 할수 없지만 그렇게 자기 주관이 없이 한평생 살다가 마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잘못된 가치관에 사로잡혀 한평생 거기에 종노릇하다가 인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에 매어 살고,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에 매어 삽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마저 합리화시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기죽어 삽니다.

반면 마리아 3남매는 확실한 믿음 가운데서 삽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사람의 엑스트라로 살고, 고정관념의 노예로 살지만 마리아 남매만큼은 확실한 자기 주도의 인생을 삽니다.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살수 있습니까?

진정한 신앙을 갖을 때 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끄시고 마지막까지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어떤 것도 이길수 있습니다. 죽음마저도 이길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잘못된 사상은 잘라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단 한번의 기회, 한 번의 인생이기에 시류에 적당히 내 인생을 맏길수가 없습니다. 가롯유다는 물질에 사로잡혀 돈을 훔치지만 마리아는 자기가 가진 것을 기쁘게 드립니다.

 

나는 세금을 낼 때도 넉넉하게 낼려고 노력합니다. 헌금을 드릴 때도 넉넉하게 드릴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 교회를 위하여 사회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것을 낼수 있고, 사회를 위해 손을 펼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 가시고 내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실 때에는 결코 나를 불러가지 않으실 것이란 확신이 들었을 때 그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믿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담대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