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갑의 신앙(중고등부 연합회 설교,2015. 6. 7주)
여호와께 열심이 있는 자 레갑과 그 자손. 열왕기하 10:15-17, 렘35:6
레갑은 겐족속으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성전에서 서기관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철두철미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도 겐 족속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 역시 겐족속으로서 예후와 함께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의 최전선에 선 사람입니다.
당시 아합의 시대는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는 시대였습니다.
바알은 풍요를 상징하고 남자신이고, 아세라는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입니다. 물질과 쾌락을 대표하는 신이지요. 당시의 종교 행사에서는 난잡한 집단 성행위가 이뤄졌었습니다. 이것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럿듯 우상 숭배는 과거나 지금이나 돈과 쾌락이 그 목적입니다.
돈과 쾌락. 이것은 우리 삶의 두 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경제 활동을 통하여 생존하고, 성을 통하여 후손을 남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었을 때 그것은 퇴폐로 흐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경계를 설정하셨을까요? .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물이 침범할수 없는 경계를 정하셨고, 에덴 동산에서는 선악과라는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약조로서 인간은 자기의 창조자가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호해야 할 피조물이 있음을 상기하는 언약인 것입다.
이것이 무너질 때 인간은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 넣어진 존귀한 존재가 아니라 물질에 지배되는 존재,쾌락에 지배되는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합의 시대에는 그것이 깨어졌습니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세상의 쾌락과 물질을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엘리야는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느냐? 여호와를 섬길테면 섬기고 바알을 섬길 테면 섬겨라.
오늘의 시대는 아합의 사대와 너무나 유사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돈과 쾌락을 쫒습니다.
성적 쾌락은 이제 더욱 타락하여 동성끼리 성행위도 합법화 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비롯하여 현재16개국이 합법화 하였고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적 타락의 종착지는 동성애 입니다.
이제 오늘날 사람들은 불륜이라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합니다. 간통죄도 폐지되었고 누구라도 좋아하는 상대와 관계 갖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탐욕도 그렇습니다.
너는 년봉이 얼마냐,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런 풍조는 교회에도 깊숙히 들어왔습니다.
물질적 풍요, 성적 쾌락의 수단인 외모를 더 없는 축복이라고 여기곤 합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말씀을 부와 건강과 관련된 말씀으로 덪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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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레갑의 자손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개혁의 최일선에서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 의지가 없이는 기독교가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는 결단,집을 짓지 않겠다는 결단.
레갑의 자손은 그것을 지켰습니다.
포도주를 먹지 않고 잡을 짓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그렇게 단호하게 끊어버립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삶을 철저히 나실인과 같이 살겠다고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사람들.
네가 레갑의 자손을 보았느냐? 네가 한 번 시험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들 입니다. 네가 내 종 욥을 보았느냐?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신 사람들 입니다.
안정된 집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포도주의 쾌락의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시대를 변화시키겠다는 이들의 결단은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청빈한 삶이었습니다.
곧 정직과 정결한 삶 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풍요와 쾌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가진 자는 더욱 가지려고 안달합니다.
아합은 자기의 백성인 나봇의 한 뙈기 밭을 빼앗고 싶어서 병이 났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봇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그 소명을 지키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각자 주신 직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습니다.
레갑의 자손처럼, 나봇처럼 내 소명, 하나남께서 주신 그 역할, 삶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종 레갑을 보았는냐? 네가 내 종 나봇을 보았느냐?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네가 관악노회 중고등부 연합회를 보았느냐? 하나님께서 이 새상에 자랑하실 수 있는 단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그리야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말로 교육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삶으로 보여 줘야 합나다.
자기도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칩니까?
하나님 신앙인은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아주 정직하게 사는 주인공을 보면서 '아,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지만 그것은 연극,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지 현실에서 그렇게 살수 있나?'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말씀, 참 좋운 말씀이지. 그러나 어떻게 그걸 다 지키고 살아. 인간인데. 신앙은 신앙이고 현실의 삶은 현실의 삶이지 않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리가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절제된 삶을 말하고 싶습니다. 정직과 정결입니다.
그래야 오늘 본문의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처럼 과감한 종교 개혁을 이루는 주체가 될수 있습니다.
저는 성경에 요나답의 자손이라고 하지 않고,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라고 한 것에 주목합니다.
요나답이 있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의 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합의 그 타락한 시대에 종교 개혁을 진두에 섰던 요나압이있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의 신앙 교육이 있었듯이, 오늘날의 혼탁한 시대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다시 오게 하는 하나님의 개혁자들을 세우는 것은 우리 부모 세대의 몫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커다란 격변기를 맞고 있습니다.
올해로 분단 70주년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바빌론 포로에서 70년만에 해방되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분단의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것을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의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이 오늘 본문의 요나답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주역입니다.
그런데 그 주역을 누가 만듭니까?
바로 그의 아버지 레갑처럼 우리가 이 시대의 레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