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창세기 14장-그리스도인의 물질관,삶의 자세
동완
2017. 3. 5. 10:13
창세기 14장
본 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십일조의 기원이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전투에서 승리하고 취한 전리품의 1/10을 하나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이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318명으로 소돔왕 등 5부족의 연합군도 당해내지 못했던 그돌라오멜의 이길 수 있었읍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이 취한 전리품과 포로되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소돔 왕에게 왔을 때 그는 자기 백성은 돌려주고 전리품은 아브라함보고 갖으라고 합니다. 당연히 전리품은 싸워서 이긴 사람의 것인데도 자기 것을 주는 것 같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을 듣고 네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털올 하나라도 갖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적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당당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을 지키며 정도를 지키며 살아갑니까? 성적으로 물질적으로 압도된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살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넘어설수 있습니다
인생은 싸움입니다. 그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삶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보내셨고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다고 확신하는 소명에 집중할 때 어떠한 장애물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돌라오멜의 군대는 아브라함 전사들 318명의 10배도 넘었을 것입니다.
영국이 19세기 대영제국을 이뤘던 것도,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원동력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그 밑바탕에 있었습니다. 청교도 신앙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고백,나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이어야 합니다.
나의 경우 사업을 시작한 지 14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뇌진탕 이후 지난 10년. 당시 고1,중3그동안 두 딸이 올해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제주도 가족여행은 내게 감회가 깊었습니다. 그 때 죽었더라면 그런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또한 예지 대학 졸업식에도 갈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318명의 자기 가솔을 이끌로 문제의 중심으로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께로서의 소명에 대한 확신, 거기서 도전의식과 삶에의 열정이 솓아오릅니다.
본 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십일조의 기원이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전투에서 승리하고 취한 전리품의 1/10을 하나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이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318명으로 소돔왕 등 5부족의 연합군도 당해내지 못했던 그돌라오멜의 이길 수 있었읍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이 취한 전리품과 포로되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소돔 왕에게 왔을 때 그는 자기 백성은 돌려주고 전리품은 아브라함보고 갖으라고 합니다. 당연히 전리품은 싸워서 이긴 사람의 것인데도 자기 것을 주는 것 같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을 듣고 네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털올 하나라도 갖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적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당당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을 지키며 정도를 지키며 살아갑니까? 성적으로 물질적으로 압도된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살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넘어설수 있습니다
인생은 싸움입니다. 그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삶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보내셨고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다고 확신하는 소명에 집중할 때 어떠한 장애물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돌라오멜의 군대는 아브라함 전사들 318명의 10배도 넘었을 것입니다.
영국이 19세기 대영제국을 이뤘던 것도,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원동력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그 밑바탕에 있었습니다. 청교도 신앙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고백,나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이어야 합니다.
나의 경우 사업을 시작한 지 14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뇌진탕 이후 지난 10년. 당시 고1,중3그동안 두 딸이 올해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제주도 가족여행은 내게 감회가 깊었습니다. 그 때 죽었더라면 그런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또한 예지 대학 졸업식에도 갈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318명의 자기 가솔을 이끌로 문제의 중심으로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께로서의 소명에 대한 확신, 거기서 도전의식과 삶에의 열정이 솓아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