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
2012.11.03(토)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종노룻하였다. 율법이라는 종교의 틀, 거기다가 장로들이 제정한 전통 등 아주 철저한 규율을 만들어 놓고 그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인간의 모든 제도,형식이 그들 삶을 규정하였다. 이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들의 의식 세계를 획일화하였고 규정하였다. 개인의 자유와 역량,느낌은 철저히 통제되었다.
오늘날도 모습은 다르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다. 법도라는 것에 매여, 환경이라는 것에 매어 종과 같이 사는 사람,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과거와 같이 율법적으로 속박하는 것 대신에 스스로가 그 덧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고정 관념,열등감, 그가 살아온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경우가 그렇다. 그가 지난 과거의 경험과 실패,좌절 등이 쓴뿌리가 되어 그의 인생을 망치고, 열등감과 분노를 일으켜 그의 건전한 삶의 방해하고 발목을 잡는다. 그 아픈 기억 때문에 기가 죽고 다시는 그러한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고,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산다. 피동적으로 수동적으로 산다. 당당하게 시도해 보는 용기가 사라졌다. 그의 강렬한 열정,강인한 의지가 깊은 의식 속에 숨어버려 큰 소리를 내지 못한다.
과거의 실패에 지배 당하는 삶이다. 과거의 어두운 경험에 속박당하고 그 기억에서 눌려 사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기면 큰일나는 것으로 생각했듯이 과거에 매어 사는 사람은 자기가 설정해 놓은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종노릇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당당함을 잃었다.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수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열등감에 휩싸여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 개개인을 고귀한 인격체로 만드셨다. 그의 생기를 친히 개개인에게 불어 넣으셨다. 그 누구도 침범할수 없는 독특한 그릇으로 빗으셨다.
생대적으로 보면 귀하게 쓰이는 사람, 천하게 쓰이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가 귀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큰 집에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룻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다. 귀히 쓰이는 그룻 천히 쓰이는 그릇이 있지만 모두가 그 집에는 주인의 용도에 다 쓰임이 있는 그릇이다. 내가 금그릇이 되지 못했다고 절망할 필요도 열등감을 갖을 필요도 없다.
질그릇이 얼마나 좋은가? 매일 주인의 밥상에 오르며 주인을 공궤하는 역할이 오히려 더 귀하지 않은가? 금그릇은 여러 사람이 소증히 여기지만 일년 내내 장식장에 쳐박혀 있지 않은가? 앞에는 지도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지만 실제로 자기가 하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이 잘 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이다. 실제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질그릇과 같은 민초들이고 평범한 우리들이다. 평범한 것, 보잘것 없지만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하여 당당한 것.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 자부심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자세이며 우리가 갖아야 하는 삶의 자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도록 지으셨다. 에덴 동산에서는 하나님과 늘 교제하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면서 서로 비교하게 되었고 자기 자신이 벗을 것, 자기의 허물과 한계를 보게 되었다. 다시 하나님과 화해할 때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성이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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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린도후서 4:15~17)
우리의 마음과 의식 세계를 덮고 있던 과거의 경험과 기억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해결하셨다.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그분이 내 대신 이 모든 굴레를 벗겨버리셨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대속의 은혜이다. 성격과 삶,정서에도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 그리할 때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된다.
우리 얼굴의 씌어졌던 고정관념의 수건이 벗겨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며 자유함을 누린다. 인생을 활기차고 능력있고 자유하면서 열정과 의지를 갖고 살수 있다. 더이상 과거의 포로, 형식의 포로, 환경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