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요한복음 강해(9장)-복음의 유일성

동완 2014. 6. 23. 09:35

요한복음 강해(9장)

소경의 신앙 vs. 소경 아버지의 신앙

유일하신 예수, 과학를 초월하신 하나님(과학을 창조하신 하나님)

 

요한복음 9장은 소경이 눈을 뜬 실로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각 개인이 처한 상황을 누구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요, 이것을 통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우리 각인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그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될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그 인생은 의미가 있어지고 능력이 있는 인생이 됨을 알수 있다.

 

사람들은 기적을 믿지 못한다. 신앙이 과학적인 기준에서 볼 때 전혀 객관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이 침을 진흙에 이겨 소경의 눈이 붙이고  실로암 못에 씻으라고 한 것에 대하여 왜 비위생적인 행위와 비과학적인 행위를 가르치려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오늘의  일반적인 사고이다.

 

또 우리가 예수 믿기를 꺼리는 것은 주위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다.  신앙대로 살려고 하면 그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다.   반면 신앙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도덕을 보완하는 관습으로 여기면 아주 자연스럽고 아무도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도덕으로서의 신앙을 인정하는 것이 오늘의 추세이다.  그러므로 많은  믿는다는 사람들마저도 그런다. '너무 빠지지 말라고'. 

 

오늘 본문의 소경의 아버지가 그러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했고 그 사회에서 출교를 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꺼리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을 믿는 별종'이라는 딱지가 부담스럽고,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유일성을 주장할 때  폐쇄적인 사람이라는 딱지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특징은 '과학' '다양성 인정'이라는 것이다.  논리와 합리, 삶의 다양한 형태를 동일한 가치로 인정하라는 가치 체계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근본 이유이다. 

 

그러나 신앙이란 '믿음'이며 '복음의 유일성'이다.  신앙은 모든 것 위에 있는 가치이며, 예수는 유일한 하나님 아들로서 다른 가치(다른 종교)와 공존시킬수 없다.  과학은 하나님 신앙 하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세상의 원리와 법칙,곧 과학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과학이 만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수 없다. 과학은 하나님의 질서을 찾아가기 위한 한 수단(tool)일 뿐이다. 

예수님은 유일한 신앙의 대상이다. 다른 것과 상대적으로 비교될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마리아,석가모니,마호멧 등과 동등하게 비교될수 있는' 상대화 시킬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 신앙을 갖을수 있는가? 

하나님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 그런다면 주위의 평판에도 두려움이 없다. 그 사회에서 어떠한 불편도 감수한다. 그는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을 담대히 전한다.  어떠한 권력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오늘 본문의 고침받은 소경처럼 말이다. 

 

오늘날 청소년의 복음화율이 3%밖에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있다. 어떻게 이 사회를 복음으로 다시 변화시킬 것인가?  어떻게 이 한반도에 그리스도의 푸른계절이 오게하여 통일 한반도시대를 복음으로 열고 한 시대를 하나님께 드릴수 있을까?  다음세대가 이 일을 감담해야 하는데 우리 기성세대는 이들을 어떻게 복음으로 도울수 있을까?  어떻게 '과학' '다양성'이라는 사상적 함정에서 우리 아이들을 건져낼수 있을까? 

 

솔로몬 후기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다양성 인정이었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 옆에 바알,아세라의 단을 비롯하여 이방 여러 신전을 함께 두었다.  소위 서로 공존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를 이뤄야 한다는 이방 여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자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종교의 다앙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결과 그와 그의 나라는 쇠락의 길로 떨어져 갔다. 처음의 순수하였던 오직 하나님 신앙이 변질되어 그 이후의 삶은 엉망이 되어갔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앤티기독교 세력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기독교의 유일성이다.  '왜 너희들만 구원이 있다고 하느냐? 왜 비상식적이냐? 왜 터무니 없는 비과학적 주장을 하느냐' 이다.  우리는 이런 혼탁하고 혼란한 가치관의 시대에 더욱 지켜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신앙과 구원의 유일성, 복음의 유일성에 더욱 굳게 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신앙에 굴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결코 인간의 자제력으로 잘 관리될수 없다.  성적인 욕망과 일탈된 성행위인 동성애, 욕심의 발로인 탐욕에 의한 강탈과 기득권 유지, 약탈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수가 없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다. 인간은 스스로 의로와질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린도후서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