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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회 설교:그리스도인의 능력(엡 1:18)

동완 2016. 3. 29. 17:45
저는 요즘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곤 합니다.
특히 오늘날 21세기 그리스도인의 덕목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어그제 부활절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부활을 믿고 있는가? 
정령 부활을 확신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왜 이렇게도 무력할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하나의 절기로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은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을 부활을 확실히 믿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자기 정체성, 전에는 술을 안먹고 담배 안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믿지 않는 사람도 금연,금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세상의 조류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태도를 갖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가치관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회피합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동화되어 갑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을 상실합니다. 거세된 동물이 더 이상 숫것으로 기능을 할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거세당함으로 능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몇일 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종교자유법이 상,하원을 통과하자 코카콜라,월트디즈니,NFL등 스포츠 단체들이 압력을 행사하여 주지사가 이 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하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이슬람도 우리와 같은 하나의 종교로서 함께 공존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이 말 그대로 하나의 가설임에도 그것이 사실인양 믿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함께 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이들을 배척할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법률화하여 일반적으로 적용할수는 없습니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종교자유법은 자기 종교양심에 따라 동성애자읭 주례를 거부할 권리, 동성애자 채용을 거부할 자유를 명문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심의 자유를 정부 단체가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양심이지 정부가 그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어느 가치관,윤리 기준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 결단의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때로는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결단이 없으면 신념을 선택할수가 없습니다. 
내가 동성자애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을 거부함으로 벌금을 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전에 직장생활 할 때 2년간 완전히 술을 끊는 신앙적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술 1,2잔 안할수가 있습니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 실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욧점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치관을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확증해 보고 싶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각인시키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음을, 부활을 분명히 믿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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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청소년 교육을 생각해 봅니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책이 서지 않습니다. 
교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습니다. 

저는 올해 회장을 시작하면서 정말 잘해봐야지 결심을 했습니다. 1.1 신년기도회부터 각오를 다졌습니다. 여라가지 행사가 있지만 청소년 비전집회에 모든 촛점을 맞췄습니다. 사실 지교회 중고등부장 실태를 파악하고 간담회를 가진 것은 비전집회에 학생들을 되도록 많이 모으시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다했습니다. 부장간담회에서 신신 부탁했고, 포스터,동영상 광고, 지교회 부장들에게 일일히 전화하여 교사,학생 참석을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년과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당시 세대 사람들을 일컬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을 하여도 함께 슬퍼하지 않았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이 자리를 떠납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마찬가지로 오늘 현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우리와 다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현실을 떠날수 있습니까? 
때로는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것처럼 행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이 세대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방식,
사실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입니다. 
그 믿음은 죽음으로 부터도 우리를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어떠한 삶의 고통으로부터도 우리를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올해도 열심히 살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