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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5-인간의 한계

동완 2011. 5. 5. 09:56

사람에게는 한계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수 없는 한계 말이다. 인간 사고와 습관의 한계 말이다. 이것이 종교일수도 있고 사고방식,습관일 수도 있다.

오늘은 종교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인 것을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는 크게 3가지의 종교가 있다. 불교,기독교,천주교이다.

나는 엇그제 어느 기독교인이 자기 몸을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허리에 창으로 상처를 낸 상태로 죽어있었다는 것, 그것을 거울로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죽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자기도 예수님과 같이 고난당하겠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런 고난을 당하셨는데 우리가 그 고난을 반복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우리를 자유케하시고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수난으로 족했다. 우리는 그것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불교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이 극단적인 자기 소신공양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설 김동리씨가 쓴 '등신불'이란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만적이라는 승려가 이복동생을 생각하며 참선하다가 결국 자기 몸에 불을 붙이는 죽음을 택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이것을 성스럽게 생각한다.

카톨릭에서도 그런 극단적인 자기 부정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절제를 강조한다. 신부와 수녀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성욕을 강제한다. 인간의 자기학대라는 면에서 본다면 불교와 개신교의 중간쯤 위치한 것이 카톨릭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간 의식의 한계.

무슬림들이 왜 폭탄을 안고 자폭할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고, 스스로를 소신공양하게 하고, 스스로를 폭탄에 죽게 할까? 그리고 왜 스스로를 극심한 성적 욕망에서 속박할까? 이들을 사고잡고 있는 이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성경이라는 등불,삶의 기준, 가치판단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나는 그 기준에 따라 무엇이 옳은지를 안다.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자유케하는 것,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조물주의 뜻이다. 그리고 그 누림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다.

입력 : 201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