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자기가 주도자가 되어서 세상을 호령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위 환경에 얽눌리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처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바로 믿음의 조상인 이삭은 어떻게 처신했는가?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자 가계를 이어받아 운영하는 족장이었다.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하여 가신들을 318명을 동원했던 것을 볼 때 그 가계 역시 1000여명이 넘는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아브라함 때에 이어 또 한번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상황이 비교적 나은 애굽으로 내려갈까 생각한 것 같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가지 말고 그 땅에 그대로 있으라고 말씀하신다(2절).
이것 역시 순종하려면 결단이 필요했다. 1000명의 가속들이 다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삭을 순종했다. 그러자 그 해 100배의 수확을 얻어 거부가 되었다고기록되어 있다(13절).
그러나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그 땅의 원주민들이 시기하여 아버지가 팟던 우물을 메워버리며, 그 땅을 떠나라고 강요한다. 이삭을 그 곳을 떠나 골짜기로 들어가서 역시 아버지 때의 우물(에섹)을 다시 팠다. 그들에게 그 우물마저 빼앗기고 다시 우물(싯나)을 팠다. 또 빼앗기고 우물(르호봇)을 다시 팠다.
3번이나 우물을 빼앗기고 이제는 4번째 우물, 르호봇에서 안정되게 생활할수 있었다. 5번째 우물(세바)도 성공하였다. 그랄 원주민들은 자기들이 이삭을 계속 괴롭혀도 그렇수록 더 강성해지는 것을 보자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게 되고, 오히려 이제는 서로 해하지 말자는 약조를 요구하게 된다(28절).
나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처세와 사업 운영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어쩔수 없이 세상 사람들과 뒤섞여 사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이웃과 어울려 살게 된다. 그들이 터무니 없이 나를 모함하기도 하고 못살게 궁지로 몰기도 한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과 맞서 싸워 나의 권익을 수호해야 할까? 그래야 할 경우도 있지만, 오늘 이삭처럼 삼세번 양보를 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의 처세 방법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사업을 하다보면 이제 그 분야는 도저히 가망이 없어서 철수해야 한다고 판단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여 보자. 하나님께서 그 곳에 계속 있으라고 감동을 주신다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다른 사람이 다 그 분야를 떠난다면 남아 있는 내가 그것을 다 차지하여 100배의 수확을 얻을수 있지 않을까?
사업의 원칙.
상황이 수시롤 바뀌는 곳에서, 인간 관계가 계속 뒤얽여 사는 곳에서 의사결정과 처신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물을수 있다. 기도할수가 있는 것이다.
나도 지난 10년간 사업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에서 오늘 이삭을 못살게 굴었던 블레셋 사람과 같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내가 일궈 놓은 것을 강탈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들이 더 잘되지는 않은 것을 본다. 내가 이삭처럼 거부가 되고 강성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마음 편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
삼세번은 양보하자. 그리고 원칙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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