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창세기 22장-결단과 망설임

동완 2017. 11. 5. 10:39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바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그의 자손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결단,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을 예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단호하게 망설임 없이 결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롯처럼 미적거리다가 그 후의 인생이
불행해지는 것을 봅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시키는 천사들 앞에서 미적거립니다. 계속 미적거리니 천사가 손을 이끌고 나아가는 지경까지 되다가 가라는 산까지 가지도 못하고 소알로 도망하여 생명은 부지하나, 함께 나왔던 롯의 아내는 그럼에도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해벼렸습니다. 롯은 그 후에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다가 인생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아들을 번제로 드리러 갈 때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갔다는 것을 보면 아마 이삭의 나이가 18세 이상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120세 안팍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잡으려고 묶을 때 아들은 얼마든지 반항하고 도망칠 수도 잇었을 텐데 아버지에 대한 신뢰,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 속에서 아버지의 결정을 자기의 결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과 이삭. 하나님은 어떻게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지은 피조물이지만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부르셨고 그와 언약을 맺습니다.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의 자손으로 부터 구세주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처럼 결단의 순간에 올바른 결단을 한 사람과 미적거리다가 자기 인생을 망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결단의 순간이 어떠합니까? 자꾸 미루지는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찌기 일어나 모리아산으로 향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는 한 시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하나님께 대한 신앙,믿음이 결정의 순간에도 발휘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것을 보여주십니다. 
여호와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지명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자기의 칼로 죽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룩한 약속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십니다. 우리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그것이 결단입니다.

이 세상은 적당히 그렇게 살만큼 그렇게 녹녹치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살아도 될까말까 한데 적당히 해서 무엇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세상 끝날까지 책임지신다는 확신,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확신 가운데 강하고 담대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